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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사람] '127 Hours' 실제 주인공 애론 랄스턴, 살기위해 스스로 팔을…그 처절함 아시나요

'무결점' '영웅적이고 뛰어난…' LA타임스 등 언론 작품성 극찬…감독·배우 벌써 아카데미 물망 육중한 바위에 팔이 낀채 조난…닷새간 사투벌이다 팔 절단한 127시간의 끔찍한 고통 담아내 조난후 가지고 갔던 캠코더로 주변 사람들에게 메시지 남기며 살아야겠다는 의지·희망 다져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127시간’(127 Hours)은 대중적 작품은 아니다. 영화는 2003년 유타주 블루 존 캐년에서 육중한 바위에 팔이 낀 채 조난돼 닷새간 홀로 사투를 벌이다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으로 자신의 팔을 직접 절단한 채 생존해 돌아온 실존 인물 애론 랄스턴의 삶을 그리고 있다.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 만큼 영화는 끔찍하고도 환각적이다. 하지만 평단은 이 영화에 어마어마한 극찬을 바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127시간’을 ‘무결점의 영화’라 표현했다. LA타임즈는 '영웅적이고도 뛰어난’ 영화라며 ‘인간의 정신력에 대한 강렬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2008년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로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휩쓸었던 대니 보일 감독과 작가 사이먼 부포이, 작곡가 A.R. 라함 트리오, 거기에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배우 제임스 프랑코가 다시 한번 아카데미를 휩쓸 가능성이 벌써부터 높게 점쳐지고 있다. 흥행도 나쁘지 않다. 개봉 첫주말 흥행수입이 26만 6000달러. 제작비 30만 달러를 사흘만에 거의 뽑은 셈이다. 이와 더불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산악인 애론 랄스턴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이다. 영화로 그려진 실제 그의 체험과 완성된 영화를 본 그의 감상 등에 대해 궁금증이 쏠리고 있는 것. 최근 베벌리힐스 포시즌 호텔에서 열린 ‘127시간’의 기자 간담회 현장에서 애론 랄스턴을 만났다. 말쑥한 양복을 차려 입은 애론 랄스턴에게는 활기찬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그의 오른팔에는 손 대신 집게 모양의 인조손이 달려 있었다. 목숨과 바꾼 팔이었다. 조난됐을 당시 127시간 만에 스스로 팔을 부러뜨린 후 무딘 등산용 칼로 직접 팔을 자르고 탈출했었던 살기위해 펼쳐야 했던 처절했던 투쟁의 증거다. 영화 속엔 그가 팔을 자르는 동안 겪은 끔찍한 고통이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 관객에게도 그 고통은 고스란히 전달된다. 기자들조차 "너무도 끔찍해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했을 때 모두가 이 고통스런 영화에서 벗어난다는 데 기뻐했다"고 말하자 "나도 실제로 팔을 자르는 데 성공한 후 기쁨의 함성을 질렀었다"고 말한다. "정말 '와우!' 소리를 지르며 미친듯이 웃었어요. 처음 조난됐을 순간부터 팔을 자르고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평소에 쓰던 스위스 아미 나이프 대신 싸구려 중국제 칼을 가져왔던 터라 결단이 힘들었어요. 몇 번 시도해보다 뼈 때문에 불가능하단 것을 알고 좌절도 했었고요. 마지막 순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5분만에 혼자 뼈를 부러뜨린 후 팔을 자르는데 1시간이 걸렸었죠. 그야말로 광적인 분노와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후엔 절망적이었던 시간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서 날뛸 수 밖에 없었어요." 산악용 로프 칼 아주 약간의 물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가 그가 갖고 있던 전부였다. 당시 애론 랄스턴은 실제 캠코더로 셀프 카메라를 찍어 자신의 심경이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들을 기록해 놓았다. 곧 죽게 되리라는 두려움 속에 찍은 영상들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랄스턴은 어떻게든 살아나가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고 유머감각까지 발휘해 자신의 127시간을 캠코더에 담았다. 그리고 이 기록은 영화의 기초가 됐다. "맨 처음 대니 보일 감독 사이먼 부포이 작가 제 역할을 맡은 배우 제임스 프랑코를 만난 날 다같이 모여 제가 찍었던 그 비디오를 보여줬어요. 다들 '이보다 좋은 교과서가 없겠다'며 열중해서 보더군요." 그 철저한 고독과 두려움 참기 힘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살아야겠단 의지와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냐고 묻자 "영화에 나온 그대로였다"고 말한다. "모든 게 무너져버릴뻔 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그때 엄마 아빠 여동생 동료 친구 등에게 캠코더로 메시지를 남기며 그 사람들에 대한 제 사랑 저를 향한 그들의 사랑이 저를 붙잡아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출하기 직전 마지막 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 그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미래에 저만의 가정을 꾸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환시같은 것을 봤어요. 이것이 저에게 또 다른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더군요." 영화의 마지막엔 실제 랄스턴의 현재 모습도 살짝 비친다. 여전히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 그리고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한 아이의 아버지가 돼 있는 모습이다. "그 일을 겪고 난 후 제 인생은 더 도전적이고 진취적으로 변했어요. 못 이겨낼 것이 없단 생각이죠. 다만 전에 없던 한 가지 두려움이라면 아내와 아이에게 얼마나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하는 걱정입니다. 그 무엇보다 저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책임감인 것 같아요." 랄스턴은 완성된 영화를 벌써 3번이나 봤다고 했다. 첫번째는 혼자 영화를 보며 당시의 경험들을 철저히 다시 한번 되새겼고 두번째는 아내와 함께 마지막으로는 온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영화를 관람했다. 특히 옆자리에 앉은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본 경험은 너무도 특별했다며 랄스턴은 눈물까지 글썽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 손을 너무 꽉 쥐셔서 제 남은 한 손 까지 없어지는 줄 알았어요. 제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렇게 마음을 졸이시더라고요. 영화가 끝났을 때 절 와락 끌어안고 '고맙다 고맙다' 하시는데 정말 뭉클했습니다. 저에게 이 영화가 정말 '선물'과도 같은 이유입니다." 랄스턴은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그린 제임스 프랑코의 연기에 대해선 혀를 내둘렀다. "친구들이 모두 '완전 너랑 똑같다'며 놀랄 정도였어요. 제임스 프랑코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정말 똑똑하고 모든걸 빠르게 흡수하는 사람이었어요. 저에 대해 또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 너무도 완벽하고 깊이있게 표현해 내 줘 놀라울 따름이죠. 그가 정말 재능있는 배우라는걸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영화가 아카데미 상을 탈 것 같냐고 묻자 장난스레 웃으며 테이블을 톡톡 두들긴다. '낙킹 온 우드'(Knocking on wood). 입방정 떨지 않고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표현이었다. 한 기자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영화 잘 만들었나요?" 애론 랄스턴은 함박 웃음과 함께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간단히 답하고 호텔방을 떠났다. "물론이죠!"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2010-11-08

[E 사람] 톱 스타일리스트서 세계적 디자이너로 '진양'

톰 크루즈 부부·디카프리오 등       여배우 케이티 홈즈와 손잡고 15년간 특A급 배우들 꾸미며       럭셔리 브랜드 '홈즈&양' 런칭 정상의 자리 한결같이 지켜와       초고가에도 날개 돋힌듯 팔려 명실상부 할리우드의 '톱 스타일리스트'인 진 양(40.한국명 진영)을 만나는데는 꼬박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잘나가기 때문이다. 최근에만 해도 그녀가 스타일링을 맡은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가 줄줄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레지던트 이블4'의 밀라 요요비치 '아메리칸'의 조지 클루니 '소셜 네트워크'의 앤드류 가필드와 제시 아이젠버그까지. 이들이 영화 개봉에 맞춰 대중 앞에 나서야 하는 중요한 순간마다 그 스타일을 책임졌으니 바빠도 보통 바쁜게 아닐 터였다. 오래도록 공을 들인 끝에 오전 시간을 쪼개 겨우 만남을 가진 날에도 그녀는 바빴다. 이미 새벽 1시에 일어나 유럽측과 전화와 이메일로 업무를 처리한 뒤였다. 몇시간 후엔 '석호필'로 유명한 배우 웬트워스 밀러의 중국 프레스 투어를 위한 피팅이 잡혀 있었고 이어 TV쇼 '글리'(Glee) 로 유명한 다이애나 애그런과 화보 촬영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래도 그녀에겐 긍정적 에너지가 넘쳤다. 동석한 자신의 전속 홍보 담당자에겐 '원피스가 너무 귀엽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사진 기자에겐 '이런 앵글은 생각지도 못했었다'며 감탄을 해댔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좋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정말 궁금했던 한 가지를 물었다. "주류 패션잡지들에 소개된 걸 보니 일당이 평균 3000달러라던데 사실인가요?" 쾌활하게 웃더니 간결히 대답한다. "가끔은 더 많이도 가끔은 더 적게도 받아요. 일에 따라 따르죠." 도대체 스타들의 스타일리스트라는 게 어떤 직업이길래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코디'하고는 달라도 한참 다를게 분명했다. "기본적으로 스타들에게 '옷을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영화 시사회나 레드카펫 기자회견 해외 홍보 활동 개인적인 이벤트 등에 나갈 때 스타일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또 스타들 대신 쇼핑을 해 주기도 해요. 그들의 개인 옷장을 멋지게 채워주는 일이죠. 워낙 유명인사들이다 보니 마음대로 옷 한벌 사러 다닐 수도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집을 리모델링 해 주고 영양사가 식생활을 챙겨주고 트레이너가 몸매 관리를 도와주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녀가 상대하는 스타들은 그야말로 특 A급들 뿐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샌드라 불럭 캐머런 디아즈 등과는 그들이 지금과 같은 유명세를 타기 전부터 일해 왔던 사이다. 톰 크루즈와 케이티 홈즈 부부 키아누 리브스 크리스찬 베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과는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이 '보그' 'GQ' '엘르' '배니티 페어'등에서 화보 촬영을 할 때도 그녀가 이들의 스타일을 결정해 카메라 앞에 세운다. 진 양은 스스로를 '스타'라는 기업의 '마케팅 부서' 인력이라고 규정짓는다. "제가 함께 일하는 스타들의 연수입은 수천만달러를 가뿐히 넘어섭니다. 웬만한 기업과 맞먹죠.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누비며 자신을 돌 볼 겨를도 없이 일하는 이 스타들이 좀 더 좋은 모습 경쟁력있는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설 수 있도록 이미지를 창조해주는 것이 '마케터'로서의 제 일입니다." 할리우드 '진 양 사단' 스타들의 특징은 멋 내지 않은 듯 하면서도 세련되고 인상적인 스타일을 자랑한다는 것. "그게 제 성공 요인 중 하나에요. 누군가가 일부러 꾸며준 듯한 느낌을 최대한 없애는 거죠. 뭔가 달라보이긴 하는데 '헤어 스타일을 바꿨나' 혹은 '살이 좀 빠졌나'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 그런 스타일링이 저만의 비법입니다." 그녀는 패션을 따로 공부했던 적도 없다. 어린시절엔 정치나 국제기구에서 일하길 꿈꿨다. 명문여대인 스크립스 칼리지 졸업 후 실제로 로펌에서 2년간 일을 배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 '이 길이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오빠가 패션 쪽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어려서부터 패션 잡지를 즐겨 봤으니 재미있게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던 오빠의 말에 용기를 내 백화점에 취직을 했다. 바이어가 될 생각에서였다. 그녀의 타고난 감각은 그때서부터 빛을 발했다. 금방 인기 온라인 쇼핑몰의 디자이너이자 스타일리스트 일을 맡게 됐고 이어 패션 잡지사 '디투어'의 에디터 자리를 꿰찼다. 유명 의류 브랜드에서도 그녀를 시니어 패션 디자이너로 영입해 갔다. 이 모든 일이 20대 중반에 이뤄졌다. 96년부터는 프리랜서로 나섰고 그러자 패션계의 내로라하는 모델 사진작가 스타 잡지들이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후 15년 동안 한번도 할리우드 톱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자리를 내놓은 적이 없다. 이제 그녀는 디자이너로서도 패션계를 호령하기 시작했다. 배우이자 절친한 친구인 케이티 홈즈와 손 잡고 럭셔리 의류브랜드를 런칭한 것이다. 두 사람의 이름을 딴 '홈즈&양'(Holmes&Yang)은 지난 연말부터 웨스트 할리우드의 맥스필드 베벌리힐스와 시카고 뉴욕의 바니스에 입점됐다. 깔끔하고 편안하면서도 지극히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품질이 특징인 브랜드다. 케이티 홈즈와 진 양이 모든 디자인과 생산을 직접 관리한다. "'홈즈&양'은 쉽고 편하고 스마트한 패션을 추구합니다. 20년 전에도 20년 후에도 입을 수 있을 옷 내 아이들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옷 디너 파티에도 어울리고 일하러 갈 때 놀러 갈 때도 어울리는 베이직 아이템들로 만들어진 옷이 바로 우리 브랜드죠." '홈즈&양'은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패셔너블한 클래식'을 지향한다. 최근 유행하는 '패스트 패션'에 대한 반기이기도 하다.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끊임없이 자신을 꾸미기도 해야 하는 여성들을 위한 옷이죠. 한 두번 입고나면 '내가 이걸 왜 샀지'하고 버릴 옷이 아니라 옷장을 열 때마다 '정말 잘 샀다' 생각할 수 있게 해 드릴 옷입니다." 모두 뉴욕 패션의 중심지인 가먼트 디스트릭트에서 생산되는 터라 재킷 한 벌에 1500달러 팬츠 한 벌에 800달러 이상 하는 초고가품들이다. 하지만 최고급 옷감과 아름다운 디자인 세심한 디테일 덕에 그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브랜드를 런칭한 첫 주에 3개 스타일이 완판돼 패션계 전체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도 있었다. 케이티 홈즈와 진 양이 만드는 옷이라는 프리미엄 덕에 온갖 패션잡지에서도 앞 다퉈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 톰 크루즈와 케이티 홈즈의 딸인 수리가 즐겨 입는 옷도 모두 '홈즈&양' 제품이란게 알려지며 브랜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점점 뜨거워지는 중이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브랜드를 확장시켜 나가야죠. 조만간 한국에도 꼭 런칭시키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베라 왕이나 랄프 로렌처럼 꼭 저만의 '패션 왕국'을 만들 겁니다. "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2010-10-25

[E 사람] '혹한의 17일' 총괄제작 제이슨 원 "첫 3D 전쟁 서사물로 감동도 흥행도 잡을 것"

4성 장군인 제임스 T. 콘웨이 미국 해병대 총사령관(Commandant of the Marine Corps)을 비롯해 해병대 수뇌부가 총집결하고 250여 명의 한국전 참전용사들도 모였다. 한국인에겐 ‘잊혀진 전투’, 그러나 미군사에는 ‘전설’로 남아 있는 장진호 전투의 정신을 기리고자 엄숙하고도 비장한 가운데 치러진 이날 행사에는 단 한 명의 한국인만이 공식 초청돼 자리를 빛냈다. 제이슨 원(Jayson Won·40·한국명 수찬).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제작비 1억 달러 규모의 3D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겠다고 공표한 주인공이다. 지난 봄 제이슨 원씨는 매드미디어 엔터테인먼트라는 영화사를 설립하고 2012년 개봉 예정으로 '혹한의 17일'(17 Days of Winter)이라는 제목의 영화 제작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영화 제작 경험이라곤 전무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할리우드의 A급 프로듀서 감독 작가가 '혹한의 17일' 작업에 함께 하기로 계약을 마쳤다. 업계 최고 권위지인 '버라이어티'(Variety)도 '혹한의 17일'의 제작진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며 "디지털 3D로 만들어져 발표될 최초의 전쟁 서사물"이 될 것이라 기대감을 표했다. 총괄제작자인 제이슨 원에 대해서도 "4년 동안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소개하며 "이미 8000만 달러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아직 캐스팅도 로케이션도 발표되지 않았지만 '혹한의 17일'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혹한의 17일'은 어떤 내용의 영화입니까.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와 그로 인해 피난할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쟁이란 극단의 상황에서 발휘되는 영웅적 인류애에 주목했습니다. 전쟁통의 냉혹한 배고픔과 추위 엄청난 위험 속에서 전혀 알지도 못했던 누군가를 위해 싸우고 희생한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 이타적인 행위일 것입니다. 전쟁은 인간의 악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위대한 선을 행하는 모습도 드러냈습니다. 이를 기념하고자 하는 것이 '혹한의 17일'의 기본 정신입니다." -왜 하필이면 장진호 전투였습니까. "저희 아버지가 장진호 전투로 살아남은 피난민이셨습니다. 당시 할머니가 14살이었던 아버지 온 몸에 쌈짓돈을 꽁꽁 싸 매 배에 태워 피난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게 아버지가 고향과 가족을 본 마지막이었습니다. 혼자 피난선에 올라 그 안에서 가진 걸 모두 빼앗기고 그 이후 말로 다 못할 고생을 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그 시절 이야기 하시기를 꺼리십니다. 너무도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 내는게 괴로운 것이지요. 장진호 전투에 대해 공부하고 영화를 준비해 갈수록 이것이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꼭 해야 할 '남겨진 이야기'라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 영화 제작진이 정말 쟁쟁합니다. "감독 에릭 브레빅과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전 제임스 카메론이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찍겠다고 해도 에릭 브레빅을 선택했을 겁니다. 전쟁 특수효과 3D에 관해 이처럼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죠. 프로듀서인 샬롯 허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인 프랭크 피어슨의 능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카데미 수상 작가니까요. 그는 20여년간 영화계를 떠나 있다 이 작품을 위해 다시 돌아와줬습니다. 모두 이 영화가 갖는 의미에 깊이 공감해주고 함께 하기로 결정해준 것입니다." - 영화의 진행 과정은 어떻습니까. "최종 대본 작업 중입니다. 몇 주 내로 캐스팅을 확정한 후 2011년 4월 촬영에 돌입합니다. 개봉은 2012년 12월로 예정돼 있습니다. 예산 규모는 8000~1억 달러입니다. 촬영은 꼭 한국에서 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한국 스태프들과 한국 기술을 이용해 만드는 첫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가 되는거죠. 성공적으로 완성한다면 한국은 일순간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돋움할 겁니다. 뉴질랜드가 '반지의 제왕'을 통해 그렇게 됐듯이 말입니다." - 앞으로 만들 영화에 대해 자신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전 순대국이 아니라 불고기를 만들겁니다. 한국인이나 미국인만이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더 많이 지닌 사람들입니다. 전 이 영화로 박스오피스 히트도 기록하고 돈도 많이 벌고 아카데미 상도 타고 싶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혹한의 17일'을 정신을 모두가 함께 이해하고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제 모든 걸 바친 영화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인해전술 중공군에 포위돼…미해병대 전멸위기에 몰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미 해병대 1사단 1만2000여 명이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 인근에서 당시 북한의 임시수도였던 강계를 점령하다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는 12만명 규모의 중공군 제9병단에게 포위돼 전멸 위기에 몰렸던 전투. 해병 1사단은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17일간 치열한 전투로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켰으며 자신들의 10배에 달하는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흥남에 도착 193척의 군함으로 군인 10만명 민간인 10만명을 남쪽으로 탈출시켰다. 영어로는 '장진'의 일본어 독음을 따 'Chosin'으로 부른다. 당시 한국어 지도가 없고 일본어 지도뿐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태프들은? 할리우드 최고 특수효과 전문가 ▶에릭 브레빅(감독)= '어비스'(제임스 카메론) '후크'(스티븐 스필버그) '진주만'(마이클 베이) 등의 비주얼이펙트 수퍼바이저를 맡은 바 있는 할리우드 최고의 특수효과 전문가. 특수효과로 아카데미상에 3회 후보로 올라 1회 수상한 경력이 있다. 2008년 3D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아카데미상 수상 유명 작가 ▶프랭크 피어슨(작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주연의 '스타탄생' 해리슨 포드 주연의 '의혹'(Presumed Innocent)을 감독하고 '뜨거운 오후'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바 있다. 미국영화작가협회 회장을 2차례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AMPAS) 회장을 1차례 역임했다. 3D기술 관련 영상제작 권위자 ▶샬롯 허긴스(프로듀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용기의 날개' '플라이 미 투 더 문' 등의 영화를 제작해 온 3D 기술 관련 영상 제작 부문의 권위자. 미국특수효과협회 이사이며 버라이어티지가 선정한 '2008년 여성 파워' 할리우드 리포터지의 '디지털기술 50인'에 선정된 바 있다. 글 =이경민 기자 사진 =주영성 기자

2010-09-27

[E 사람] 안·소·연, 28세 한인여성 디자이너 할리우드 패션을 만들다

안소연은 할리우드의 패션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보증했다. 그녀에게 2년 연속 TV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우는 에미상을 바친 것이다. 그녀가 수상한 카테고리는 '최우수 버라이어티/뮤직 프로그램 의상상'. AMPAS는 매년 영화와 TV를 대표하는 아카데미상과 에미상을 주최하는 단체다. 영화계로 치자면 안소연은 아카데미 의상상을 2년 연속 수상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좋아요. 오래도록 이 일만 해오셨던 분들이 '상 받을만 하다'고 인정해주신거잖아요. 제 재능은 물론 함께 일해 준 우리 팀 전체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해요. 요새 들어 TV쇼에서 저희만큼 창의적 의상 작업을 하는 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엄청나게 빠른 성장이다. 일러야 30대 후반 40대 초반이 돼야 이 정도 자리에 오르는데 그녀는 20대에 이만큼이나 왔다. 요새 업계에선 안소연의 이름 앞에 'TV가 가장 사랑하는'(TV's favorite)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그럴만하다.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두 리얼리티쇼 '유캔댄스'(So You Think You Can Dance)와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의 의상 디자이너이자 스타일리스트다. '유캔댄스' 시즌 4~7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89의 참가자 모두의 의상은 그녀가 만들거나 코디했다. 제이 레노의 '투나잇쇼'(Tonight Show) 뮤지션들의 스타일링도 담당하고 있다. 리얼리티쇼는 그녀의 특기 중 특기다. 패션 센스는 물론 참가자들의 특징과 그들의 공연 스타일을 빠르게 파악하는 감각 순발력 카리스마를 두루 지녀야 하는 분야에서 안소연은 더욱 빛난다. 그에게 에미상을 두 번 연속 안겨준 것도 리얼리티쇼 '유캔댄스'다. 전국의 무명 댄서들이 최고의 춤꾼 자리를 놓고 치열한 춤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힙합 재즈 컨템프러리 볼리우드 스타일까지 온갖 장르가 나와요. 안무가들과 춤의 콘셉트, 스토리, 댄서들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 춤, 이 댄서엔 이런게 어울리겠다’하고 옷을 만들어요. 댄서들이 춤을 추는 순간 비로소 살아나는듯한 의상을 만들려고 해요. 춤과 의상은 공생관계에요. 의상은 댄서들의 춤에 생명력을 주고, 그 댄서들의 춤 역시 제 옷에 생명력을 주니까요.” 날고 긴다는 댄서들이 매주 10여명씩 출연해 춤대결을 펼치는 만큼 돌발상황이 많다. 이번 시즌부터는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어 긴장이 더하다. “머리 뒤로 다리를 올리는 안무처럼, 별 기상천외한 동작이 다 있잖아요. 게다가 춤을 계속 추다 보면 근육이 점점 커져서 옷이 튿어지기도 한답니다. 방송사고 날까봐 항상 조마조마해요. 한번은 여자 댄서 어깨 끈이 끊어져 놀라는 장면이 뉴스에까지 나왔어요. 혹시를 몰라 테이프를 있는대로 붙여 고정시켜 놓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몰라요. 댄서들은 테이프 붙이기 싫다고 항상 투정들을 하지만, 어림도 없죠.” 수퍼스타를 꿈꾸는 재능있는 가수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은 그녀에게 ‘변신시키는 재미’를 준다.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소녀를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시키기도 하고, 자신감 넘치는 개성 강한 이에겐 직접 만든 전위적 의상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정말 보람돼요. 평범하고 이름없던 이들을 멋지게 변신시키는거죠. 참가자들이 추구하는 음악세계와 맞는 패션으로 그들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고, 그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킨다는 건 너무나 창의적인 작업이에요.” 셀러브리티들의 스타일도 그녀가 책임진다. 머라이어 캐리, 제니퍼 로페즈, 에이브릴 라빈, 핑크, 케이트 보스워스가 그녀를 통해 변신을 거듭했다. 지금은 캐리 언더우드의 투어를 맡고 있다. 패션잡지 에디터일에 각종 패션 컨설팅도 하고 있다. 그녀의 신념은 간단하다. ‘트렌드 팔로워’가 아닌 ‘트렌드 세터’를 만든다는 것이다. 디자이너인 동시에 스타일리스트라는 점은 그녀에게 많은 플러스 요인이 됐다. “기존의 패션 공식을 해체시키기, 다양한 엣지 더하기, 의상과 캐릭터에 재미난 트위스트 주기를 즐겨요. 그 점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신 거죠.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라는 점도 저에겐 유리했어요. 패션계의 ‘넥스트 제너레이션’이라 여기고 새로운 눈과 감각을 높이 쳐 주시는 것 같아요.” 맡은 일이 많다 보니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것은 당연지사. 일주일에 한 두번은 마사지를 받아야 할 만큼 힘든 일정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단다. 모든 일이 하나같이 다 재미있기 때문이란다. 앞으로의 계획도 당차다. 브랜드 런칭도 준비 중이다. 몇 년 후엔 대중적 메인스트림 패션 라인과 커스텀 디자인만 하는 부티크도 운영하고자 한다. 가장 ‘핫’한 아티스트, 독특한 패션과 퍼포먼스로 유명한 레이디 가가와도 꼭 한 번 일을 해보고 싶다고. “원래 특이한 뮤지션들을 좋아하거든요. 레이디 가가와 함께라면 디자이너로서 제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남들은 저보고 이른 나이에 이미 많은 걸 이뤘다 하지만, 전 더 할 일이 많아요. 최선을 다해야죠. 어느날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 ‘후회없는 삶을 살았느냐’고 물어봤을 때, 망설임없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린시절 안소연은…"갖고 싶었던 바비인형, 직접 바느질해 놀았죠" 안소연은 '검소한 부모님'덕에 패션에 눈을 떴다. 비싼 돈 주고 바비인형의 옷을 살 바엔 직접 만들어 입히자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엄마 아빠가 정말 검소하셨어요. 그래서 용돈 1달러를 받아 직접 천을 사다가 옷을 만들었어요. 바느질을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르겠어요. 양말을 깁던 할머니를 보고 배웠을까요? " 8살때였다. 부모님은 척척 바느질을 해대는 딸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셨다. "엄마 아빠가 보시더니 '넌 진짜 좋은 의사가 되겠다. 수술 하나는 정말 잘해겠구나' 하시는 거에요! 제 반응이요? '맙소사'였죠!" 그녀가 본격적으로 패션의 길을 가겠다 결심한 건 16살 때였다. 그 때 그녀는 살짝 진로고민 중이었다. 한 쪽은 패션 다른 한 쪽은 스포츠였다. "발리볼 축구 육상을 두루 했어요. 마침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장학금 줄테니 발리볼 선수로 오라 그랬어요. 근데 오티스도 장학금을 주겠다는거에요. 이럴까 저럴까 하다 '그냥 아트를 해야겠다' 싶어 결정했죠 뭐" 부모님은 노발대발이셨다. 패션은 미래가 없다며 반대하셨다. "학교 다니는 중에도 계속 부동산 학교 가라 영구 문신을 배워봐라 비달 사순 가서 헤어 스타일링을 배워 봐라 사정 하셨어요. 부모님이 LA한인타운서 미용실을 오래 하셨거든요. 그 뒤를 잇길 바라셨었나봐요. 그냥 '네네' 하면서 다녔더니 나중엔 제가 뭘 하든 상관을 안하시더라고요. 지금이요?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시죠."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2010-08-30

[E 사람]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조예원 조명감독, 애니메이션에 생명 불어넣는 '빛의 마술사'

95년 발표됐던 1편(2900만 달러)과 99년 발표됐던 2편(5700만 달러)의 오프닝 스코어와 비교해도 월등한 수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극장에 몰려 들었고 장난감들의 귀여운 소동에 웃고 울고 가슴 따뜻해져 영화관을 나섰다. 특히나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따스하고도 희망찬 분위기는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여 캐릭터에 공감하고 스토리에 몰입하게 하는 일등공신이었다. 애니메이션의 명가 픽사(Pixar)가 디즈니와 함께 일궈 낸 또 한 번의 성공스토리 뒤엔 한인 아티스트 조예원 감독의 섬세한 감수성과 솜씨가 녹아있다. “1,2편과의 연결성을 찾으면서도 그 사이 발전한 테크닉들을 어떻게 구현해 낼 것인가가 관건이었어요. 나와 있는 기술을 다 쓰면 사진처럼 느껴지는 ‘포토 리얼리즘’이 되고 마는데, 그렇게 되면 전편들과 큰 괴리가 느껴지고 말테니까요. 테크놀로지는 도입하면서도 관객들이 ‘그때 그 우디, 그때 그 버즈’로 느낄 수 있게 만드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조예원 감독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조명을 담당하고 있다. ‘토이스토리3’ 엔딩크레딧에서 찾을 수 있는 그녀의 타이틀은 마스터라이팅 아티스트(master lighting artist). “실사 영화에서 조명 감독이 하는 일을 컴퓨터를 통해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림자, 색깔, 빛의 밝기, 톤 등을 일일이 조절하는 일이죠. 픽사 조명팀에는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 배경을 가진 사람과 미술쪽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골고루 있어요. 그 만큼 업데이트되는 테크놀로지를 쫓아가는 노력과 미학적 재능이 골고루 갖춰져야 할 수 있는 일이죠.” 그 무엇보다 ‘스토리’를 중시하는 픽사의 아티스트인만큼, 그녀도 ‘스토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라이팅’을 추구한다. “어느 병원 복도에 할아버지가 앉아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창문에 눈부시게 환한 햇살이 들어온다면 참 밝고 긍정적인 느낌을 주겠죠? 하지만 빛이 희미하게 들어 와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곳까지 닿지도 않는다면 슬프고 외로운 느낌을 주게 됩니다. 이미지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조명도 중요하지만 비주얼 스토리텔링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랍니다.” ‘토이 스토리3’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면마다 섬세한 조명의 변화와 색의 향연은 관객들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영화 초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앤디의 환상이 표현된 부분은 고채도로 표현을 했고, 이어지는 현실은 저채도로 표현해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1,2편에서는 항상 밝고 따뜻한 느낌으로 그려졌던 앤디의 방은 쓸쓸한 느낌이 배어나도록 표현됐다. 대학생이 된 주인에게 버림받은 장난감들의 마음을 더 잘 표현해내기 위해서였다. 폭군같은 곰인형 ‘랏소’로 대표되는 붉은 색과 장난감들의 주인 ‘앤디’로 대표되는 푸른 색을 대비시켜 위험한 상황과 안전하고 편안한 상황,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들을 빼어나게 표현해내기도 했다. 알고 보면 더 재미난 조명의 마법이지만, 조 감독은 굳이 관객들에게 이를 알아차려보라 요구하지 않는다. “비주얼이 너무 강조되면 오히려 스토리를 방해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로 인해 스토리 전달에 도움이 됐다면 그게 더 성공한 조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3D 효과 역시 스토리를 뒷받침 할 수 있는 하나의 테크닉으로만 쓰여야 한다는게 그녀의 신념이다. 때문에 ‘토이 스토리3’ 3D버전도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입체 효과 대신 그리 도드라지진 않지만 스토리 몰입에 공헌하고 있는 소소한 효과들로만 이뤄져있다.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라이팅’을 위해 조 감독은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관찰을 하고 영감을 찾아 나간다. “거리를 걸을 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운전하면서 창 밖을 바라볼 때 등 모든 상황, 모든 환경을 유심히 보고 기억해요. 이런 상황과 느낌이 언제 작업에 나타나게 될 지 모르는 것이니까요. 일반 회화 작품이나 실사 영화도 많이 보고, 갤러리나 비엔날레 같은 곳도 열심히 다니면서 많이 보고 관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계에 입문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역시 스토리다. “자신의 사소한 경험들을 통해 독창성 있는 단편을 많이 만들어봤으면 해요. 크고 작은 스크리닝을 통해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줄 기회도 자주 만들어 의견을 교환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 죻죠. 입사를 위한 데모 작품을 만들 때도 테크닉 적에 치중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스토리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단편을 만들어보는게 좋을 겁니다. 이 분야에서의 가능성은 크레이티브한 사람에게 열려 있으니까요.” 한 가지 더, 유학생이나 뒤늦게 애니메이션계에 입문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 온 사람이라면 영어 공부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고 조언한다. 입사 전 보다 입사 후에 더 큰 역할을 하는게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란 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아주 디테일한 부분을 언어로 표현해 의견 교환할 때가 많아요. 저는 픽사에 들어와서도 계속 영어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계속했어요. 발음 교정도 받고 퍼블릭 스피킹 수업도 듣고요. 섬세한 부분까지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아주 중요하거든요.” ■조예원 감독은… 서울대 조소과 학부 과정을 거쳐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원 공부를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뉴욕여행을 하다 그 곳의 활기찬 에너지에 매료돼 다시 미국에 올 결심을 했다. 그룹 투어를 하며 관광버스에서 맨해튼 34가에 내린 순간 ‘여기로 다시 와야겠다’ 생각했다고. 한창 모션 그래픽 붐이 일던 99년 뉴욕 SVA(School of Visual Arts)로 유학와 컴퓨터 아트를 공부했다. 그녀의 졸업작품을 눈여겨 본 스튜디오들이 조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드림웍스에 입사해 ‘슈렉2’ 작업에 참여한 후 픽사로 옮겨 ‘카’, ‘라따뚜이’, ‘월E’, ‘업’ 등에 참여했다. ‘토이 스토리3’을 마친 지금은 내년 개봉 예정인 ‘카2’(Cars 2)를 작업 중이다. 한국 무용, 오페라 등과 조명을 결합한 실험적 공연도 준비하는 등 다른 예술 장르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2010-07-19

[E 사람] '친한파' 유명 작곡가 겸 프로듀서 피터 라펠슨 "팝컬처 역사 장식할 한국 가수 등장할 것"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하지만 변화는 분명 일어나고 있죠. 메인스트림 팝 컬처에 새로운 역사를 장식한 한국 가수가 나올 날도 그리 머지 않았습니다." 마돈나 엘튼 존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세계적 스타들과 작업해 온 유명 작곡가 겸 프로듀서 피터 라펠슨. 그는 팝계에서 '친한파'로 통한다. 2003년부터 한국 가요계에 관심을 갖고 교류를 시작해 한국의 유수 연예기획사들과 여러 방면에서 합작의 성과를 보였던 것은 물론 한국 가수들의 미국 진출 한국 음원의 미국내 디지털 유통 등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장본인이다. 보아 신화 플라이투더스카이 이정현 김완선 등 그간 함께 작업한 한국 가수들도 쟁쟁하다. 라펠슨이 작곡한 신화의 '헤이 컴온'(Hey Come on)이나 보아의 '돈 스타트 나우'(Don't Start Now)등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 전체에서 큰 인기를 얻은 곡들이다. 그는 "한국인들의 팝 컬처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이는 세계적 히트 가수가 될 수 있는 잠재력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가끔은 한국인들이 미국 사람보다 팝 문화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단 생각이 듭니다. 미국 사람들은 '미국 것'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에 무관심하고 배타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외국인'들의 음악은 모두 자신들의 '아류'라고 생각하고 존중하지 않아 미국 시장 첫 진입은 매우 어렵죠. 하지만 일단 멋진 감각을 지닌 좋은 음악이라고 받아들여지면 인종과 국적 등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이 또한 팝 시장입니다." 라펠슨은 실제로 한인도 아시안도 아닌 다른 여러 인종의 미국 10대들을 직접 만나 그들이 보아나 원더걸스 등의 음악을 알고 즐겨 듣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이제 시작이구나' 생각했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겐 그 가수가 '코리안이냐 다른 아시안이냐'하는 사실 따윈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쿨하냐 쿨하지 못하냐' 뿐이죠." 둘째 가라면 서러울 팝계의 거성들과 일해 왔지만 한국 가수들에게서 받은 깊은 인상은 라펠슨의 음악 인생에도 새로운 영감이 됐다.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라펠슨 미디어 컴퍼니 한 켠에 한국의 기획사들의 방식을 벤치마킹한 '연습실'을 만들어 놓은 것도 그 영향이다. "한국 가수들의 트레이닝 시스템은 거의 '군대' 수준입니다. 열네댓살 무렵의 보아가 하루 종일 노래와 춤 영어 일어 중국어 공부를 하는 걸 보며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과는 그 누구도 상대가 안 되겠다'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답니다. 일에 임하는 태도 자체도 완전히 달라요. 연습이나 미팅 시간에 절대 늦지 않고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직업 정신'은 한국 가수들만이 가진 최고의 경쟁력입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미국 시장에서의 좌절은 이들에게 큰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강조했다. 미국 활동에 매진하느라 한국에서의 인기 기반을 포기해야 하는데서 오는 갈등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소 보수적인 한국적 취향과 섹시함으로 어필해야 하는 미국적 취향을 오가는 게 쉽진 않을 겁니다. 게다가 '섹시하다'고 느끼는 코드도 문화권마다 다르다는게 문제죠. 한국과 아시아에서 인기를 미리 다져놓는 것이 미국 진출에 어떤 영향을 발휘하느냐는 점도 잘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JYP 소속 가수들 중 일부가 처음부터 미국 무대에서 데뷔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아직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라펠슨은 '스타'가 되기는 여자 가수가 쉽지만 '수퍼 스타'가 될 가능성은 남자 가수가 더 높다는 분석도 내 놓았다. "쉽게 말해 남성팬들은 '짐승' 입니다. 여자 가수가 '핫'(Hot)하다고 느끼면 그냥 좋아하고 소비하는거죠. 때문에 웬만큼 노래와 춤이 되는 여자 가수라면 어느 정도 위치까지는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팬들은 다릅니다. 멋진 남자 가수에게 끌리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더 많은 요소와 더 많은 이미지들을 따지고 고려해 종합적인 판단으로 '저 가수가 멋있다'는 생각에 이르죠. 그래서 남자 가수들이 쌓는 인기는 훨씬 강하고도 단단하기 마련입니다." 비나 세븐처럼 연기와 노래의 영역을 오가는 스타들이 팬들을 사로잡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라펠슨은 덧붙였다. "팬들에게 여러가지 다른 모습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엔 새로운 미디어들을 통해 스타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지면서 이들 같은 '멀티 탤런트' 스타들은 더욱 유리해졌죠." 문득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가수는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한참을 고심하던 그가 '이효리'란 답을 내놓았다. "무대에 선 이효리의 모습을 몇 번 봤는데 정말 대단했어요. 프로다운 느낌이 물씬 난다고 할까요? 비디오도 훌륭해서 얼마든지 미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겠더라고요. 영어만 잘 했다면 꼭 함께 작업해서 미국 진출을 돕고 싶었는데 아쉬울 따름입니다." ■피터 라펠슨은… 작곡가겸 음반 제작자. 빌보드 1위를 기록하며 전세계에서 27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마돈나의 '오픈 유어 하트'(Open Your Heart)를 만든 장본인이다. 이 밖에도 그가 코어스 에리카 제인 등과 작업한 20여곡의 노래들이 빌보드 각종 하위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출연한 '크로스로드'(Crossroads)의 영화음악이나 최고 인기를 누리며 폭스TV에서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글리'(Glee)의 사운드 트랙 제작에도 참여했다. 현재 버뱅크에서 음반 및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제작 및 마케팅을 주 업무로 하는 라펠슨 미디어 컴퍼니(RMC.Rafelson Media Company)를 운영하고 있다. 피터 라펠슨의 아버지는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등을 연출한 유명 영화감독 밥 라펠슨이다. 그는 잭 니콜슨과 10여편의 영화를 찍었으며 뉴욕 영화비평가상 최고의 감독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상 각본상 후보에 오르는 등 작품성을 높이 평가 받아온 명 감독이다. 글=이경민 기자 사진=김상진 기자

2010-05-31

[E 사람] 미 데뷔앨범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원더걸스

그의 지극히 대중적인 노래들을 가장 잘 소화하는 요정들이자,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일생일대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 있는 요정이기도 하다. 인형같고 요정같기만 한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을 보는 견해는 양분된다. ‘잘하고 있다’, ‘대단하다’는 의견과 함께, ‘불쌍하다’, ‘시간낭비다’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분명 미국 시장에서 조금씩이나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해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 ‘핫 100’에 이름을 올린 쾌거를 올린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보아도, 세븐도, 비도 아직 해내지 못한 한국 가수의 미국 진출 성공 모델을, 이 인형같은 다섯 소녀 ‘원더걸스’가 최초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신나는 댄스뮤직 '2DT' 앞세워 미주시장 공략 본격화 공연장마다 10대팬들 몰려와 환호…6월부터 전미투어 각지에서 보여준 한인들의 관심과 성원 "감사드려요" 지난 15일은 '원더걸스'에게 어마어마한 '빅 데이'였다. 팝계 최고의 아이돌 '조나스 브라더스'와 함께 그로브몰에서 깜짝 공연을 가졌고 곧장 다운타운 스테이플스 센터 인근으로 넘어 와 키스FM(KIIS-FM)이 주최하는 초대형 음악축제 '왕고 탱고'(Wango Tango)에도 출연했다. 이어 '원더걸스'는 자신들의 미국 데뷔 앨범 '투 디퍼런트 티어즈'(2 Different Tears.이하 2DT)를 발표하는 런칭 이벤트를 펼쳤다. 〈본지 5월 17일자 A-2면> 일정이 끝난 직후 만난 요정들은 지친 기색보다는 적잖이 흥분돼 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정신 없었어요. 원래 긴장을 많이 안 하는 편인데 오늘은 진짜 떨리더라고요. 그래도 무대 올라가니까 너무 즐거웠고 특히 저희 의상이나 메이크업 등 콘셉트가 바뀌었는데도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노래도 따라해 주셔서 정말 신기하고 기뻤어요." 이번에 소개된 '원더걸스'의 미 데뷔 앨범은 신곡 '2DT'와 그 간의 히트곡 '노바디' '텔 미' '소 핫' 등의 영어 버전이 실린 정식 앨범이다. 지난 해 '노바디' 싱글 활동이 전초전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원더걸스'의 미국시장 공략 본 게임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앨범이기도 하다. 선예 유빈 소희 등의 멤버들이 타이틀 곡을 소개했다. "80년대를 주제로 한 레트로 풍의 신나는 댄스 음악이에요. '노바디'보다 훨씬 펑키한 느낌에 역시나 중독성 강하고 따라 부르기 쉬운 곡이죠. 중간 댄스 브레이크를 비롯해 재미난 요소들이 참 많은 곡이에요." 영어도 꽤 능숙해졌다. 한정된 어휘이긴 하지만 멤버 모두가 기본적인 대화나 인터뷰는 자연스러운 영어로 소화해냈다. 앨범 런칭 이벤트에 참가한 팬들은 10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 중엔 아시안 아메리칸이 절반 백인을 비롯한 타인종들이 나머지 절반 가량을 이뤘다. 엄마 손을 잡고 따라 온 열 살 남짓 된 백인 소녀들도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장난기 가득한 백인 소년도 있었다. 아빠 무등을 타고 온 예닐곱살 아시아계 꼬마 아이들도 무더기로 '원더걸스!'를 외치던 라틴계 학생들도 있었다. "10대 어린 학생들이 많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조나스 브라더스' 투어 오프닝 무대에 서면서 '노바디'가 많이 알려졌기 때문도 있고 어린 소녀들이 저희의 의상이나 콘셉트를 새롭게 느끼고 관심을 가져주시더라고요." 팀의 리드보컬인 예은의 분석처럼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은 철저하게 '트윈 세대'를 타겟으로 한다. '트윈 세대'는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 '끼어 있다(between)'는 뜻으로 8~14세의 아이들을 말한다. 인형이나 장난감 대신 패션 화장품 연애 등의 관심을 보이며 '디즈니 채널'과 '해나 몬태나' '하이 스쿨 뮤지컬' 등에 열광하는 아이들이다. 조나스 브라더스 투어의 오프닝 공연 로우틴(Low-Teen)세대를 위한 패션 브랜드 '저스티스'의 매장 등에서 '원더걸스' CD를 판매한 전략도 모두 '트윈 세대'를 잡기 위한 영리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원더걸스의 미국 행보는 한국팬들에겐 오히려 '분노'의 대상이기도 했다. 한국 최고의 걸그룹이 미국에서 바닥부터 새로 시작하며 고생 할 필요가 있냐는 비판이다. 멤버들도 최근 선미가 탈퇴한데 이어 전 영어 회화 강사가 '원더걸스는 불법 개조한 사무실에서 의료 보험조차 없이 무리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폭로'를 해 맘 고생을 했다. 소속사 측에선 선미의 탈퇴는 학업 때문이며 전 회화 강사의 주장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오해로 멤버들은 즐겁고 긍정적으로 미국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리더 선예는 "힘든 일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어려운 일을 함께 이겨나가며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아 오히려 좋다"고 말한다. "결과가 어떻든 이 과정만으로도 저희는 모든게 신기하고 감사해요. 미국에서 여러가지를 배우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일 아닐까요?" '원더걸스'는 오는 6월 4일부터 전미 투어를 시작한다. '하우스 오브 블루스'등 작은 클럽을 위주로 하는 공연이지만 콘서트를 통해서 팬들을 만나는 것이 기본 중 기본인 팝 시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활동이다. 더욱이 데뷔 앨범을 발표한 직후 여는 단독 공연이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원더걸스' 요정들은 한인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는다. 자신들의 미국 활동 인기 기반은 역시 한인들이었단 믿음이 있다. "미국에 계신 한인분들이 안 계셨다면 솔직히 여기까지도 못 왔을 것 같아요. 한인분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저희 노래를 많이 소개해주시고 응원군이 되어주셔서 빌보드 차트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사랑 보내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더걸스 전미 투어 일정 '원더걸스'의 첫 단독 전미투어 '원더 월드 투어'(Wonder World Tour)는 미국 최대의 공연기획사인 라이브네이션(Live Nation)주최로 열린다. 6월 4일 워싱턴 DC 5일 애틀란타 6일 뉴욕 8일 시카고 9일 휴스턴 10일 댈라스 11일 LA 12일 애너하임 13일 샌프란시스코 29일 밴쿠버에서 투어가 이어진다. 2PM이 스페셜 게스트로 오프닝 무대를 장식할 예정. 이어 7월에는 2일 샌디에이고 3일 라스베이거스 6일 잉글우드 7일 시카고8일 세인트루이스 9일 디트로이트 10일 토론토 18일 보스턴에서 공연을 갖는다. 7월 공연에는 2AM이 게스트로 참여한다. '원더걸스'의 투어 티켓은 인터넷 티켓매스터(www.ticketmaster.com)나 중앙티켓센터(213-368-2511)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글=이경민 기자 사진=백종춘 기자

2010-05-17

[E 사람] '윌&그레이스' '오피스' 등 NBC TV 프로그램 제작 총괄 에드윈 정 부사장

미국의 대중 문화 코드 창조·선도자 역할 '홈런'프로그램 위해 매주 수백명과 네트워킹 경쟁서 살아남기 위해 참을성·열정 필수 "자랑스러운 코리안 아메리칸 롤모델 될터" 어찌보면 이 시대 미국인들의 기호는 프라임타임대 인기 TV 프로그램들 속에 다 녹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NBC TV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들을 제작 총괄하고 있는 에드윈 정 부사장은, 오늘날 미국의 대중문화 코드를 만들고 이끌어 나가는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소년 에드윈은 유난히 모든 일에 열심인 아이였다. 그가 나고 자란 7~80년대 시카고엔 한국인은 물론, 아시안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소년은 무리에 끼기 위해 공부도, 스포츠도 무조건 열심히 했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거기서 시작됐다. 또래 다른 친구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영화를 보고, 많은 음악을 들었다. 어릴 때는 시카고 불스나 컵스, 베어스 등에서 운동선수로 활약하고 싶단 생각도 했었지만, 커가면서 막연하게나마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스탠포드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에드윈이 LSAT을 치른 후 유명 로펌의 변호사가 되거나, 월스트리트에서 활약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LSAT 시험장에서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이대로라면 내 꿈은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무모하리만치 과감한 선택을 해 버린 것이다. 성공이 보장된 길을 버리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부모님께 대한 죄송함도 있었지만, 그는 일단 일을 저질렀다. “많은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안전한 미래를 버리고 자신의 꿈을 따라 사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어요. 이민 1세대인 부모님들께서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으로 우릴 키워주셨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 스스로를 막는 가장 큰 장벽입니다. 저만 해도, 이 길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오래도록 큰 후회가 뒤따랐을 겁니다. 인생은 길고 할 일은 많아요. 홈리스가 되지만 않는다면야, 젊은 시절 조금은 ‘위험’한 선택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겁니다.” 그도 NBC에 자릴 잡기 전까진 업계의 외곽을 전전했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대한 갈망만 컸지 막상 그 내부에 대해선 무지했던 탓이 컸다. “배우나 감독처럼 눈에 보이는 직업 말고는, 이 분야에 다른 어떤 일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어요. 빼어난 외모나 연기실력, 타고난 감각 같은 게 없으면 재미있고 창조적인 일을 하기란 불가능한 줄 알았으니까요. 영화나 TV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는데 프로듀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수 많은 직업, 수백 수천명의 사람이 필요한단 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금방 제 자리를 찾았을 수도 있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그는 매일같이 엄청나게 많은 배우, 작가, 감독, 프로듀서들을 만난다. 그들과 함께 제2의 ‘프렌즈’(Friends), 제2의 ‘윌&그레이스’(Will&Grace)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홈런’을 기록하는게 그의 일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한 방송국이라는 NBC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스토리도 강하고, 큰 웃음도 줄 수 있는 프로를 만들어야 하는게 그의 임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의 앞에 하루가 멀다하고 편성을 기다리는 새로운 프로그램과 쇼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방송을 타게 되는 것은 고작 10~20% 뿐이다. 높은 시청률과 좋은 평가를 받는 히트작은 그 중에서도 극소수다. 그래서 에드윈 정 부사장은 자신의 일을 ‘실패의 비즈니스’(Failure Business)라고 부른다. “이 분야에선 모두가 실패를 경험합니다. 아예 편성 자체가 되지 않기도 하고, 낮은 시청률로 고전해야 하기도 하죠. 하지만 10번 실패해도 11번째 성공하면 모두가 돈을 벌고, 모두가 명성을 얻는 게 TV 비즈니스입니다. 실패조차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매우 소중한 경험과 인맥이 되는 것은 물론이죠. 때문에 실패를 견뎌낼 수 있는 참을성과 열정은 이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 케이블의 강세로, 공중파 TV가 예전보다 점유율이 많이 낮아진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정 부사장같이 창조적 일을 하면서도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는 방송사 중역의 역할을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졌다. “이제 시청률로만 승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대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이나 작품 속에서의 광고 등을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해야 합니다. 케이블로의 배급이나 해외시장 수출과 DVD판매 등도 염두에 둬야 하는 시기죠.” 일은 그에게 끊임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것을 요구한다. 어릴적부터 그랬듯, 에드윈 정은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한다. 매주 수백명의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과 네트워킹을 한다. 새벽 4시까지 새 대본을 읽거나 준비 중인 쇼의 가편집본에 코멘트를 다느라 잠 못드는 일은 다반사다. 아무리 사소한 코멘트도 3번 이상 반복해 본 후에야 적어 넣는다. 다른 공중파나 케이블의 드라마, 쇼들도 닥치는대로 모니터한다. 한국 프로그램들도 본다.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프린스’, ‘풀하우스’ 등도 다 섭렵했고, ‘개그콘서트’도 빠뜨리지 않는다. 모두 그가 즐기는 취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긴 하지만, 이 정도 노력은 좋은 변호사나 의사나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개성있는 사람들과 협력해야 해 힘들기도 하지만 정직하고 유연성있게, 서로를 존중하며 일한다는 기본만 지키면 큰 문제도 없죠. 무엇보다 제 일을 너무도 즐기고 있기 때문에, 사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만 합니다.” 정 부사장은 유난히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이 크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한인 네트워크에도 관심이 크고, 켄 정이나 존 조 같은 한인 배우들을 NBC쇼에 캐스팅하는 노력에도 열심이다. 샌드라 오, 대니얼 대 김 같은 TV스타들은 물론 그레이스 박, 바비 리 등 유명세가 덜 한 배우나 코미디언들도 눈 여겨 보고 있다. 그는 “다음 세대 코리안 아메리칸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서라도, 꼭 최고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자랑스러운 코리안 아메리칸이 되고 싶어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얼마나 다양한 직업이 있는지, 얼마나 여러가지 방법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지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더 많은 한인들이 절 보면서 꿈을 꾸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에드윈 정은… NBC 엔터테인먼트 & 유니버설 미디어 스튜디오 코미디 프로그래밍 부사장. 프라임타임 시간대 시리즈물과 코미디물의 편성 및 제작을 책임지고 있다. 시카고 태생으로 스탠포드 대학을 거쳐 2002년 NBC에 입성, 그간 ‘윌&그레이스’(Will&Grace), ‘오피스’(The Office), ‘30 록’(30 Rock), ‘프라이데이 나이트 라이츠’(Friday Night Lights), ‘라스베이거스’(Las Vegas), ‘척’(Chuck)등의 인기작을 제작 총괄해왔다. 2009년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고 권위지인 ‘할리우드 리포터’가 선정한 ‘35세 이하 가장 영향력있는 문화산업 간부 35인’에 선정됐다.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2010-04-12

[E 사람] 허현 드림웍스 모델링 수퍼바이저 "영어 달려 오직 작품으로만 승부해 왔죠"

유학생 출신 드림웍스 입성 한국인 1호…한인들 실력 인정받아 이젠 20여명 활동 모델링이란 디테일 살리는 섬세한 작업…최종 목표는 '비주얼 이펙트 수퍼바이저' 글렌데일 5번 프리웨이 인근에 자리한 드림웍스(Dreamworks) 스튜디오. ‘슈렉’, ‘쿵푸팬더’, ‘마다가스카’, ‘샤크테일’ 등 남녀노소를 불문한 전세계 모든 사람들을 웃고, 울고, 꿈꾸게 만드는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만들어진 ‘꿈의 공장’과도 같은 곳이다. 아기자기하게 정돈된 수목들과 작은 폭포, 연못에 뛰노는 잉어들까지, ‘회사’라기 보단 차라리 ‘공원’에 가까운 이 곳은, 최근 개봉한 ‘드래곤 길들이기’(How to train your dragon)의 이미지들로 더욱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었다. 작품 콘셉트에 맞는 갖가지 재미난 장식품들이 스튜디오 이곳 저곳을 장식하고 있는 풍경은, 개봉 2주 만에 전국적으로 약 92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평론가들의 극찬과 영화팬들의 사랑을 동시에 거머쥔 ‘드래곤 길들이기’의 흥행 성공에 대한 자축의 느낌이 배어 나왔다. 이곳에서 허현 모델링 수퍼바이저를 만났다. 그는 '드래곤 길들이기' 작품 전체에 입체감과 생생함을 입힌 모델링 분야 총 책임자다. 허 팀장에게 "도대체 모델링이 무엇이냐"고 먼저 물었다. "간단히 얘기하면 컴퓨터 안에서 조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과거 디즈니의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같은 작품들이 평면적인 그림들을 빠르게 이어 만든 애니메이션이라면 '슈렉'이나 '토이 스토리' 시리즈 같은 최근의 애니메이션들은 모두 2차원 화면 안에서도 3차원적인 입체감을 지니고 움직이는 시각효과를 지닌다는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위해 허현 팀장이 지휘하는 '모델링' 아티스트들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 하나부터 배경의 나무 하나까지도 일일이 작업을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3D가 보편화 되면서 화면의 깊이까지 느낄 수 있게 되고 입체적 디테일에 대한 요구도 커지면서 모델링 작업의 중요성도 또 한층 커지고 있다. "캐릭터 디자이너가 스케치를 해오면 그것을 컴퓨터 안에서 360도 모형으로 빚어내는 거죠. 애니메이션을 평면에서 입체로 끌어내는 첫 작업이에요. 기하학적인 구조를 짜주는 일이라고 할까요? 모델러가 되려면 '셰이프'(Shape)를 보는데 있어 예술적 눈과 조형적 감각을 갖춰야 하고 디테일을 얼마나 적절하게 넣고 뺄 수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죠." 허현 팀장은 1.5세2세가 아닌 유학생 출신으로 드림웍스에 입성한 제 1호 한국인이기도 하다. 그를 통해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한국인의 가능성이 높이 평가되기 시작했고 이제 그가 열어 준 문을 통해 기회를 잡아 드림웍스에 입사한 한국인은 20여명에 이른다. 허현 팀장은 "그냥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홍보일을 하다 매너리즘이 찾아왔을 무렵 '터미네이터'를 보고 영화 특수 효과에 대한 막연한 관심을 갖게 됐고 97년 조지아주 사바나 칼리지 오브 아트 앤 디자인으로 유학의 길을 택했다. 그곳에서 컴퓨터 아트를 공부한 후 시카고의 '빅 아이디어'라는 프로덕션을 거쳐 2003년 드림웍스에 입사하기까지 모든 것이 시기적으로 맞춤맞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드림웍스가 허현을 선택했던 것 같냐"고 묻자 "싸서 아닐까요?" 라는 장난스런 답변이 먼저 돌아왔다. 하지만 사실은 '실력과 노력'이 답이었다. "전 사실 아직도 영어가 자유롭지 않아요. 그래서 어떤 설명보다도 가장 멋진 최종 작품을 그냥 보여주는 수 밖에 없었어요. 그게 날 가장 잘 보여주는 방법이었죠. 이 분야에도 말만 잘하는 사람들 근사하게 포장만 잘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어요. 저나 다른 한국분들은 어줍잖은 말로 커버할 수가 없으니 열심히 해서 실력으로 보여주는 수 밖에요." 많은 애니메이션 학도들에게 그렇듯 허현 팀장에게도 드림웍스는 '꿈의 회사'였다. "처음 왔을 때 '세상에 이런 회사가 다 있구나' 싶었죠. 모두가 여유로운 모습이었고 그래서 정말 일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제프리 카젠버그(드림웍스의 설립자이자 CEO)의 인재에 대한 투자가 정말 놀랍단 생각이에요.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창의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니까요. 회사 안에 오락실에 요가 클래스도 있고 아티스트들 책상 꾸미라며 회사에서 200달러씩 주고 안젤리나 졸리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왔다 갔다 하고 CEO건 누구건 다 같이 식당에 앉아 점심을 먹을 때면 참 여러가지면에서 직원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회사란 생각이 들어요." '샤크테일'에서 시작해 '마다가스카' '오버 더 헷지' '플러시' '쿵푸팬더' 그리고 '드래곤 길들이기'까지 드림웍스의 거의 모든 작품이 허팀장의 손을 거쳤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쿵푸팬더'다. "기본적으로 아이디어가 신선했고 동양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보니 제 의견을 넣을 수 있는 여지도 많았죠. 같이 일한 팀도 정말 뛰어난 사람들로 꾸려졌었어요. 특히 전설적 캐릭터 디자이너 니콜라스 말렛과의 작업이 재미있었죠. 처음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모르고 '네 의견이 맞네 내 의견이 맞네'하며 엄청 싸웠는데 이젠 좋은 친구가 됐어요." 최근작 '드래곤 길들이기'에 대한 애정도 크다. 개봉 첫 주말 동네 극장 관객들이 다함께 웃고 박수를 치며 신나게 감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의 한 부분이란 사실이 그렇게 자랑스러웠단다. 스토리가 탄탄한 작품이란 점도 '드래곤 길들이기'에 마음이 가는 중요한 이유다. "이제 애니메이션도 '스토리'로 승부하는 게 트렌드에요. 비주얼만 화려하거나 오직 웃기려는 의도로 몸개그만 난무하는 작품들은 더 이상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약점도 바로 '스토리'다. "미국은 스토리팀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고 하나로 움직여 '모두가 일반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요. 하지만 한국은 감독 한 명이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크다 보니 아무리 비주얼이 좋아도 스토리는 약하죠. 또 마음들이 너무 급해요. 여기선 보통 한 작품 준비하는데 3~4년이란 시간을 두고 8000만 달러씩 투자하고 기다려주는데 한국에선 그런 마인드를 기대하기가 힘들죠." 일본 애니메이션 역시 스토리의 한계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 사랑을 받긴 힘들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일본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걸출한 스토리텔러가 있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동양적'으로 머물고 있어요. 때문에 세계 관객에게 공감을 얻긴 힘들고 매니아들의 사랑받는데 그치는 겁니다." 허현 팀장에게 또 다른 '꿈'을 물었다. 많은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들이 그렇듯 그도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겠거니 했지만 허 팀장은 "감독은 내 재능의 영역이 아니더라"고 말한다. "그냥 비주얼을 '이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색감 여백의 미 실제적 디테일을 잘 살리면서도 모든게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거죠. 굳이 꿈을 꿔 보자면 애니메이션 전체의 영상을 책임지는 '비주얼 이펙트 수퍼바이저'가 되고 싶은 정도랄까요? 이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 뛰어 들고 싶어하는 많은 한국인 후배들에게도 좋은 선배가 돼 주고 싶어요. 애니메이션의 여러 분야 중 자기에게 맞는 한 분야를 찾아 내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2010-04-05

[E 사람] '스타' 존 조가 한인 배우지망생에게 전하는 성공 노하우

많은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높고 견고한, 그리고 수많은 경쟁자들이 달려 드는 할리우드 캐스팅 시스템에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인 배우들 중 할리우드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존 조(37)가 배우 지망생들에게 전하고픈 자신만의 경험과 노하우는 무엇일까. 최근 LA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액터페스트’에 참석, 배우로서 필요한 자질과 노력에 대해 소개한 존 조의 이야기를 지면으로 옮겼다. 현재 ABC TV 드라마 ‘플래시 포워드’의 새로운 시즌을 준비 중인 존 조는 올 여름 영화 ‘해롤드와 쿠마’ 속편 촬영에 돌입하며, 내년에는 영화 ‘스타트렉’의 새로운 시리즈에서 또 한번 멋진 연기를 보여 줄 예정이다. ◇ 닥치는 대로 일하라 "대학시절 친구의 권유로 처음 연기를 시작한 이래 연극 인디필름 TV쇼 스튜디오 필름 등을 두루 경험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배우란 직업은 매번 새로운 일을 하고 매번 다른 것을 배우고 마스터 할 수 있다는 데 큰 매력이 있지만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고 내 마음대로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점에서 힘든 점도 많다. 특히 백인이나 흑인들에 비해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로서 많은 역할을 따 내기란 아직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물론 최근 들어 광고쪽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캐스팅 기회가 많아지긴 했다. 하지만 이 역할들은 '매력적인 배역'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내러티브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역할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관객의 뇌리에 남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세대의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들이 할 일은 '스토리가 있는 배역'을 연기해 관객이 자신의 캐릭터를 '따라 오게' 만드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닥치는 대로 배역을 맡아봐야 한다. 돈을 받건 못 받건 일단은 다양한 현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꼭 훌륭한 작품만 선택해야 겠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라. 어떤 방식으로든 자꾸 연기를 하다 보면 그 시간과 경험 속에서 자기 연기의 장단점과 현장의 노하우를 익히게 된다. 자기만의 연기 스킬은 일찍 발견할수록 좋다. 캐스팅 디렉터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도 여러 작품 여러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 역시 LA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눈 여겨 본 프로듀서가 에이전트를 소개해주고 다시 캐스팅 디렉터에게 연결이 되며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오디션 경험도 따로 많이 쌓아야 한다. 많은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나 지망생들이 실제 오디션에는 좀 처럼 나가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오디션 스킬은 연기 스킬과는 또 다른 것이다. 캐스팅 담당자들이 일렬로 앉아있는 사무실에 들어가 다섯 줄 정도 되는 짧은 대사를 통해 자신을 어필하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액팅 클래스를 듣는 것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대학 마지막 학기에 연기 수업을 들었다. 고전적 방식의 연기론을 주로 공부했지만 이 내용은 후에 시트콤을 연기할 때도 큰 도움이 됐다. 댄스 클래스 보이스 클래스도 좋다. 모든 퍼포밍 스킬들은 연기를 하는데 다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 자기 관리에 힘쓰라 "배우가 된 후 긴장을 이완시키는 버릇을 들이는 데 퍽 오랜 시간이 걸렸다. 큰 배역을 맡아 중요한 촬영을 앞 둔 날이면 한 잠도 못자고 캐릭터에 대해 생각하며 밤을 새다 현장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 마치 학교에서 시험을 치는 자세로 연기에 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크루들과 카메라들이 즐비하고 단 몇 시간 동안 수백만 달러의 예산이 소요되는 곳에서 긴장을 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촬영일수록 긴장을 풀고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평소와 똑같은 컨디션으로 임해야만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있어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다. 긴장과 부담감을 없애고 잘 자고 잘 먹고 운동을 하도록 노력해라. 평범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연기의 비법 중 하나다.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료 그룹을 찾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배우란 외로운 직업이다. 그래서 더더욱 '커뮤니티'를 형성해 서로에게 의지가 돼 줘야 한다. 정보 교환에도 필수적이다. 어떤 오디션이 있고 어떤 캐스팅 포스트가 있는지는 물론 캐스팅 디렉터나 감독들의 성향 등 드러나지 않는 정보도 알 수 있는 중요한 통로다. 또 한가지 '읽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강조하고 싶다. 연기 지망생들 중에도 주어진 스크립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야기의 톤이나 그 장면이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읽는 기술'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다. 많은 스크립트 중에서 어떤 스토리와 역할이 나에게 맞는지 고르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항상 집중해서 대본을 정독하고 첫 느낌이 어떤지 장면 장면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되짚고 관찰하는 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 시스템을 익혀라 "많은 사람들이 에이전트 시스템에 대해 물어온다. 20여년 전까지 할리우드는 에이전트들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분위기였지만 비즈니스의 덩치가 커지면서 최근엔 더 세분화돼 배우의 커리어를 관리해 주는 직업들이 생겨났다. 나에겐 현재 개인 에이전트 매니저 변호사가 있다. 에이전트는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여러 프로젝트들의 소식을 모으고 사람들을 만나 일거리를 가져다 준다. 매니저는 가장 가까이에서 내 커리어를 관리해준다. 어떤 역할을 맡는게 좋을지 TV와 영화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언론 노출이나 홍보는 잘 되고 있는지 등을 면밀히 파악하고 의논하는 사이다. 변호사는 실제 계약에 앞서 딜을 해주고 서류 작업을 해 주는 사람이다. 모두 내 수입의 일부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일한다. 하지만 모두가 에이전트 매니저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이를 소중히 여겨 줄 사람이라면 에이전트든 매니저든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상관없다. 당신에게 별로 흥미도 열정도 없는 사람을 고용해 수입의 일부를 떼어 주는 것은 바보 짓이다. 일단 누군가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했다면 당신이 그의 '고용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올해는 5회 이상 오디션에 참가하고 싶고 시트콤에 한 편 이상 출연하고 싶다' 하는 식으로 원하는 일과 목표를 확실히 밝혀라. 그들과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 함께 이뤄가고 평가해 나가는 것은 훌륭한 '팀'으로 함께 성장해 나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글=이경민 기자 사진=백종춘 기자

2010-03-22

[E 사람] 미국 50여개 도시 상영 영화 '마더' 감독-봉준호, "김혜자씨 히스테릭한 연기에 전율 느껴"

영화 ‘마더’의 북미 개봉을 앞두고 LA를 방문한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이미 뉴욕, 보스턴, 워싱턴DC 등에서 주류 언론과의 인터뷰만 80여회를 소화했다고 혀를 내두르던 그는 “오랜만에 한국말로 하니까 좋다”며 ‘재연’까지 섞어가며 신나고 진지하게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김혜자, 원빈 주연의 스릴러 드라마 ‘마더’는 오는 12일부터 미국 50여개 도시에서 상영된다. -감독이 직접 소개하는 ‘마더’는 어떤 영화인가. “전작에 의지해 소개한다면 ‘엄마가 괴물이 되는 얘기’, 혹은 ‘괴물같은 엄마 얘기’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우리는 ‘엄마’를 ‘사랑’과 동일시하면서, 얘기만 나와도 눈물부터 흘린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살인사건이라는 극단의 상황을 통해 엄마가 갈 수 있는 극한이 어디인가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엄마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겁내지 않고 보여주려 했다.” -어디서 영감을 받아 ‘마더’를 쓰게 됐나. “우리 어머니의 영향을 좀 받았다. 물론 사람을 죽이시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지만, 미리부터 걱정하시거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안절부절 하시는 경향이 있으셨다. 또 한 가지, 몇 년 전 봤던 충격적 인터뷰 클립이 있었다. 서울의 한 60대 후반 노인이 중국이나 연변에서 어린 여자아이들을 입양했다 성추행을 한 후 파양하다 적발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헌데 단칸방에서 같이 살던 범인의 노모가 한 인터뷰에서 ‘우리 착한 아들이 오갈데 없는 것들 보살펴줬는데, 배은망덕한 천하의 요물들이 아들을 욕보이고 누명을 씌웠다’며 ‘모두 잡아죽여야 한다’고 길길이 뛰더라. 참 웃기면서도 섬뜩하고 슬펐다. 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경계조차 없는 듯 했고, 알더라도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것만 같은, 굉장히 본능적인 ‘엄마’의 모습을 봤다. 그 잔상이 ‘마더’의 시나리오를 쓸 때 굉장히 많이 남아 있었다.” -주인공으로 김혜자를 선택하게 된 배경은. “아까 말한 그 느낌이나 이미지를 가장 막강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게 김혜자 선생님이었다. 내가 ‘변태’라서 그런지 그 동안 TV를 통해서도 ‘국민엄마’의 모습보단 어둡고 예민한 모습, 가끔씩 히스테리를 부리는 듯한, 약간 정신이 딴 데 가 있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모습이 많이 보이더라. 그게 너무 좋았다.” -함께 작업해 보니 어땠나. “실제로도 내가 본 모습 그대로시더라.(웃음). 정말 탁월한, 천재적인, 동물적인 배우였다. 배우는 훈련을 통해서 되는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송강호씨랑 일하면서도 느꼈는데, 감독이나 프로듀서는 길가는 행인을 실미도에 붙잡아 놓고 2~3년 훈련시키면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배우는 훈련의 영역을 넘어서는 존재다. 김혜자 선생님이 전형적인 예다. ‘내가 뭘 하고 싶다’ 마음의 세팅이 되면 주저함이 없었다. 신인배우처럼 ‘마더’에 임해주셨고, 그 에너지에 젊은 스태프들이 쫓아가느라 헉헉댈 정도였다.” -김혜자의 연기가 가장 빛났던 장면을 꼽는다면. “예고편에도 나왔던, 눈에서 레이저를 뿜으며 ‘내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하는 장면이다. 찍고 나서 너무 놀라 ‘선생님 선생님, 이거 완전 압권이에요. 와서 보세요’ 하며 모니터를 보여드렸더니 ‘어머 어머, 내 눈이 왜 이래, 이거 안 쓰면 안 돼요? 너무 무서워’ 하시며 본인도 놀라셨다. ‘이렇게 하면 놀라겠지’하며 계산하고 신체를 컨트롤해서 나온 장면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몰입해 감정이 폭발을 일으키니 신체가 거기에 자연히 따라가는 김혜자 선생님의 연기 패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국의 특수한 사회적 맥락이 많이 그려지는데도 불구하고 시사회때 외국 관객들이 굉장히 많이 웃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칸느나 토론토에서도 많이들 웃더라. 미국에서도 ‘변함없이 괴상한 블랙 유머들이 많이 나온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 오히려 한국 관객들이 좀 경직된 자세로 영화를 받아들인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인터뷰마다 나와 너무 두 눈 부릅뜨고 ‘극한까지 갑니다!’해서 그런가보다. 익스트림한 영화이긴 하지만 예고편이나 마케팅이 너무 엄청난 스릴러처럼 포장된 면도 있었다. ‘살인의 추억’, ‘괴물’등에서 쭉 함께 작업했던 송강호란 배우의 있고 없음의 차이도 있었다. 한국 관객은 영화를 볼 때 ‘배우의 유머’를 많이 본다. 송강호가 나오면 일단 웃을 준비부터 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하지만 외국 관객은 ‘감독의 유머’를 본다. 그 부분에서 차이가 좀 있었다. 또 외국 관객들이 한국의 특수한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에 대해서도 이제 제법들 짐작을 하는 듯 하다. 소위 ‘필름고어’라는 사람들은 90년대 말부터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의 영화는 줄줄이 꿰고 있다 보니, 그런 디테일과 한국적 로칼리티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단 느낌도 받았다.” -영화를 만들 때 외국 관객 염두에 두나. “나 좋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데도 너무 바쁘다. ‘외국 관객들이 헷갈리거나 모르지 않을까’하는 건 의식할 여유조차 없다. 간혹 자막을 넣다 보면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부딪힐 때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걸 겁내진 않는다. 꼭 넣고 싶은 디테일인데, 외국 관객 생각해 빼는 일은 절대 없다. 이해하든 말든 알 바 아니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가 훨씬 중요하다. 또 그렇게 계속 하다 보면, 외국 관객도 자연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뉴욕에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도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고 뉴욕을 대충 상상할 수 있듯 말이다.” -‘괴물’이나 ‘마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진행은 어떻게 돼 가나. “‘괴물’은 유니버설 스튜디오, 프레드릭 본드 감독이 붙어 잘 진행이 되고 있다더라. ‘마더’는 칸느 때부터 ‘메릴스트립 주연으로 리메이크 해야 된다’며 얘기는 많았는데, 아직 진전은 없다. 요새 보면 할리우드에서 한국영화나 콘텐츠를 정말 많이 사가고 있다. 그만큼 할리우드의 크리에이티브가 많이 고갈된 것 같다. 자국 콘텐츠가 바닥이 나니 한국이나 일본, 프랑스의 영화나 만화 등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다. 우린 그냥 하던데로 할 뿐인데 말이다. 솔직히 미국쪽 에이전트가 보내주는 할리우드 시나리오를 보면, 우리끼리 얘기지만 정말 한심한 것들이 많다. 헌데 그런 시나리오들이 반 년쯤 지나면 정말 유명한 감독, 배우가 붙어서 제작되고 있더라. 이래서 할리우드를 ‘공장’이라고 하는 것 같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막 쓰고, 막 찍고, 막 연기하고. 이곳의 장점이자 단점인 듯 하다.”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할리우드에서도 직접 연출을 해 볼 생각이 있나. “에이전트를 통해 살포되는 할리우드쪽 시나리오 중엔 수준 있는 작품을 만나기란 힘든 것 같다. 물론 프로듀서가 직접 찾아와 진지하게 연출을 의뢰한 적도 있긴 하지만, 티끌만한 것도 내 맘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데다 은근 소심한 스타일이라 과연 될까 싶다. 워낙 프로듀서나 스튜디오의 힘이 센 동네 아닌가. 오우삼 감독도 최근까지 최종 편집 때문에 신경전이 장난 아니었다던데, 나같이 처음 온 감독에게 파이널 컷 권한을 줄 것 같진 않다. 신중히 생각하고 있다. 뒤집어 생각하면 파이널 컷과 각종 컨트롤 권한이 보장된다면, 꼭 해보고 싶기도 하다. 미국 뿐 아니라 일본, 프랑스 등 다른 시스템을 갖춘 곳에서 영화를 만들어 보는 데도 관심은 있다.” -차기작인 ‘설국열차’의 진행상황은 어떤가. “열심히 쓰고 있다. 올 한 해는 시나리오 쓰고 프리프로덕션 하고, 내년부터 촬영해서 내년 말이나 2012년에 개봉할 수 있을 듯 하다. 일본, 프랑스, 미국 제작사들의 관심이 높은 데다 예산 규모가 커서 국제적인 공동 투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배우들도 여러 나라 여러 인종이 믹스될 것 같고, 영어 대사가 50% 정도 될 듯 싶다. 제작자이신 박찬욱 ‘사장’께서 잘 결정하시리라 본다.(웃음)” 글=이경민 기자 사진=신현식 기자

2010-03-08

[E 사람] 탤런트쇼 '콜레버레이션' 기획자 폴 김·로이 최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듯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돈'의 흐름은 필수적이다. 돈이 있어야 비로소 무대의 막이 오르고 조명에 불이 켜지며 무대에 공연자들이 선다. 돈이 들어간 만큼 공연은 다시 그만큼의 돈을 벌어들여야 한다. 그래야 스태프와 공연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고 다음 무대가 준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획자들은 쇼를 통해 무대 위에 선 공연자들을 통해 수익을 추구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이 두 사람 PK(폴 김)와 로이 최는 다르다. '콜레버레이션'(Kollaboration)의 기획자인 둘은 오직 커뮤니티를 위해 쇼를 올린다. 올해로 꼭 10년째를 맞은 아시안 아메리칸 탤런트 쇼 '콜레버레이션'은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아시아계 젊은이들을 하나로 모으고 그들이 재능을 펼치고 리더십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꿈의 무대'를 마련해주고 있다. 돈을 버는 일 따윈 안중에도 없다. 순수 비영리 공연기획팀인 것이다. 비싼 입장료도 관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어마어마한 출연료를 지불하고 톱스타를 불러 세우는 일도 없다. 옆 집 대학생 유난히 끼가 넘치던 교회 친구 우리 동네 레스토랑에서 파트타임일을 하고 있던 젊은이들이 무대를 채운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그들과 똑같은 젊은이들이 객석을 채운다. 엔터테인먼트를 통한 커뮤니티의 역량강화(Empowerment through Entertainment). 그것이 '콜레버레이션'의 정신 PK와 로이 최 두 사람을 중심으로 수천 수만의 아시안 아메리칸 젊은이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다. ▷'콜레버레이션'의 오늘 '콜레버레이션'의 창립자인 PK가 처음 행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이었다. 어려서부터 퍼포밍 아트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코리안 아메리칸들을 한데 모아 멋진 쇼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실행에 옮겼다. 아무것도 없는 맨손이었지만 일단 일을 저질렀다. 끼 많은 한인 청소년들을 공연자로 뽑아 USC내 보바드 극장 무대에 올렸다. 7명의 자원봉사자가 그와 함께 했다. 물론 결과는 참담했다. 1200여석의 객석엔 400여명만이 앉아 있었고 구멍난 행사 비용을 메꾸느라 개인 크레딧카드를 마구 긁어대야 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종교도 정치도 떠나 그저 음악과 춤으로 가득찬 아름다운 밤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그 에너지와 예술적 영감이 가득찬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는 정말 놀라울 정도였죠. 엄청난 손해가 계속됐지만 매년 윌셔 이벨 극장 패서디나 시빅 오디토리엄 스카티시 라이트 오디토리엄 오르피움 시어터 포드 앰피시어터 등으로 규모를 키우고 자원봉사자들도 늘려가며 행사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2003년부터는 LA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쇼를 올리기 시작했고요."(PK) 로이 최가 합류한 것은 2004년 무렵이다. '콜레버레이션'의 취지에 깊이 공감한 그는 행사 대상을 코리안 아메리칸 뿐 만이 아닌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로 넓혀 나갔고 각 커뮤니티 단체나 기업의 후원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도 어려운 점이 많아요. 특히 행사의 좋은 취지를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스폰서를 구하는 일이 가장 힘들죠. 한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행사인데도 오히려 한인 기업이나 단체들이 큰 호응을 보여주시지 않아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릴 응원해주는 수없이 많은 젊은 아시안 아메리칸들 몰래 와서 티켓을 구입해주고 가는 1.5세~2세 한인 배우 등 여러 후원자들 덕에 '콜레버레이션'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답니다."(로이 최) ▷ '콜레버레이션'의 내일 올해 '콜레버레이션'은 10주년을 맞아 6000석이 넘는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공연을 갖는다. 작년 같은 곳에서 열렸던 쇼는 완전 매진된 바 있다. 중앙일보 후원으로 오는 6일 열릴 공연에는 한국계 뮤지션 클라라 폴 지성 김을 비롯한 7팀이 자신을 뽐낸다. 부두 소울 토니 록 등의 화려한 게스트 퍼포머들도 무대를 빛낼 예정이다. 전국적으로도 토론토 뉴욕 애틀란타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휴스턴 등 10개 도시에서 쇼를 이어간다. "공연을 슈라인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것 10개 도시에서 공연해보고 싶다는 것은 저희의 오랜 꿈이었어요. 얼마나 재능있는 아시안 아메리칸들이 많은지 그들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하나로 모인 그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실 수 있을 겁니다."(로이 최) "매 공연이 끝날 때마다 많은 참석자들에게 감사 이메일을 받아요. '콜레버레이션'이 수많은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큰 삶의 의미와 기쁨이 됐는지 들을 때면 당장 오늘 죽더라고 아쉬움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전 아직도 아주 가난한 엔터테이너일 뿐이지만 어떨 땐 세상 누구보다 큰 부자일지도 모른단 느낌이에요."(PK) 특히 올해를 끝으로 PK는 '콜레버레이션'의 기획자 자릴 떠나기로 결정해 이번 행사는 그들에게 더욱 큰 의미가 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더 젊은 세대에게 자릴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콜레버레이션'은 유스 무브먼트(Youth movement)가 돼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 마흔살 아저씨가 돼서도 젊은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진 않아요. 제 자식 같은 '콜레버레이션'을 떠나는게 아쉽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나가리란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마 5년 내에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쇼를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봅니다." '콜레버레이션'의 미래를 책임지게 된 로이 최는 앞으로도 계속 순수성을 유지한 비영리 단체로서 행사의 정신과 인기를 이어나가겠다는 각오다. 단순히 일회적 쇼를 넘어 더욱 의미있는 단체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청사진도 갖고 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콜레버레이션' 참가자들의 월례 모임을 더욱 내실있게 만들어 커뮤니티 봉사와 리더십 함양 네트워킹과 멘토링의 역할까지 갖춰나가도록 노력 중이다. "저희의 최종 비전은 지금의 목표와 정 반대에요. 지금은 엔터테인먼트를 통한 커뮤니티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마지막엔 커뮤니티 역량강화를 통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through Empowerment)를 꿈꾸고 있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콜레버레이션'을 통해 만난 우리 젊은 아시안 아메리칸들은 그만한 역량과 가능성이 충분했거든요." ▷문의: www.kollaboration.org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2010-03-01

[E 사람] '바우어리 힐스 엔터테인먼트'-그레이스 이·안드레아 정

아직은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 하지만 이미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주요 인사’다. 이들의 이름 앞엔, ‘프로듀서’, ‘디렉터’라는 근사한 타이틀이 붙는다. 세계적 디자이너 리치 리치, ‘프로젝트 런웨이’를 만든 제작자 엘라이 홀츠먼, 배우 메간 폭스 등이 이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 뉴욕 패션위크, 칸느 영화제 현장 등을 마음껏 누빈다. 두 사람에겐 벌써 밀려드는 일감을 교통정리 해 주는 에이전트가 있다. 유명 스튜디오들이 두 사람과 일하기 위해 아우성이다. 감히, 이들을 일찌감치 성공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파워 피플’이라고 불러본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 NYU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이어오다 2009년 본격적으로 의기투합했다. 서로의 재능과 경력과 아이디어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수많은 인기 리얼리티 쇼를 제작 연출했다. MTV '런스 하우스'(Run's House) '라이프 오브 라이언'(Life of Ryan) 브라보 채널의 '레이첼 조 프로젝트'(The Rachel Zoe Project) 스타일 네트워크의 '하우 두 아이 룩'(How Do I look?) 등 주류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누려왔던 쇼들이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안드레아의 경력은 영화판에서 더 빛난다. 많은 단편과 광고 등을 통해 실력을 쌓아 온 그녀는 메간 폭스 미키 루크가 주연 촬영이 한창인 화제작 '패션 플레이'(Passion Play)를 프로듀싱 중이다. 1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그녀가 직접 투자 유치하고 제작 총괄했다. 세계적 감독인 구스 반 상트와 '골든 수어사이드'(The Golden Suicides)라는 작품도 제작 중이다. 유력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문지들은 벌써부터 이 작품들에 주목하고 있는 상태다. 10여년 전에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은 사실 퍽도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그레이스의 부모님은 전형적인 이민 1세들이 그렇듯 딸이 명문대를 나와 안정적 직업을 갖길 바랬다. "부모님은 제가 아이비리그를 졸업해 의사나 변호사가 되길 바라셨어요. 하지만 전 그렇게 '전형적'인 삶을 살기가 너무 싫었었죠. TV와 영화를 너무 좋아했고 어린 마음에 연예인들도 많이 만나고 싶었어요." 결국 자신의 뜻대로 NYU에 진학해 방송과 연출 공부를 하며 각종 방송국과 스튜디오에서 닥치는 대로 인턴일을 했다. 돈 한 푼 못 받으면서 일하기 일쑤였고 부모님의 걱정은 더욱 커져 갔지만 그녀는 행복했다. 마이너리티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10배 열심히 일했고 노력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정말 '터프 터프 멘스 월드'(Tough Tough Men's World)에요. 여성들이 있다 해도 남성 호르몬을 맞아 여성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았죠. 누군가 멘토가 있었으면 했는데 찾을 수가 없어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를 더 악 물었죠. 일부러 무거운 장비를 들었고 미친듯이 일했어요. 지금은 세상도 많이 바뀌고 제 작품들로 크레딧도 많이 쌓아 놓고 나니 모두가 존중해주는 분위기에서 맘껏 일할 수가 있죠. '그건 직업이 아니야' 하셨던 부모님도 이젠 많이 이해하고 응원해주세요." 안드레아의 성장 환경은 이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오리건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어려서부터 문화 예술을 맘껏 즐기고 누릴 수 있었다. "부모님께선 제 관심사와 예술적 호기심에 아주 오픈된 분이셨어요. 어릴 때부터 읽고 쓰고 연출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아트 스쿨을 다녔고 방학이면 이런 저런 예술 캠프에 참가할 수 있었죠." 안드레아는 커리어를 쌓는데 거침이 없었다. 계속해서 공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많은 페스티벌과 모임을 다니며 서로 영감을 나누고 참신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모든 일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아이디어만 빼앗기는 위험을 줄이고 가장 영리하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자리 잡는 방법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패션계의 '악동' 이면서도 천재적 재능을 자랑하는 문제적 디자이너 리치 리치와 연이 닿은 것도 안드레아의 부단한 열정과 성실함 덕이었다. "한 필름 페스티벌의 셀러브리티 스윗에서 리치 리치의 에이전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 함께 재미난 일을 꾸며보자' 했어요. 그래서 리얼리티쇼를 만들어보기로 결정한 것이죠. 일단 리치를 만나 일상을 카메라에 담다 보니 그 창조적이면서도 광기 어린 라이프 스타일이 너무나 재미있고 에너지 넘친다는 걸 알았죠. 아마 패리스 힐튼을 뛰어넘는 리얼리티쇼의 걸작 캐릭터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어요." 거기에 리얼리티쇼 제작과 연출엔 도가 튼 그레이스의 노하우가 더해졌다. 빠른 시간에 놀랄 만한 경력을 쌓아온 덕에 프로젝트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두 사람이 만든 파일럿 에피소드만 보고도 MTV E! 스타일 VH1등 7개 케이블 채널이 판권을 따내기 위해 달려 들었다. 스튜디오는 램버트로 결정됐다. 리얼리티쇼 제작의 신화이자 램버트의 부회장인 엘라이 홀츠먼이 직접 이들을 픽업했다. 두 사람의 작품 속 주인공 뉴스가 온갖 잡지와 연예 사이트의 헤드라인을 도배할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 이미 자신들의 '꿈'을 살고 있다는 그레이스 이와 안드레아 정. 서로를 깊이 아끼고 존경하는 두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큰 일'을 내 보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18살이 됐을 때 언젠간 내 프로덕션을 갖고 내가 만든 쇼를 팔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이미 저는 그 삶을 살고 있어요. 이제 정말 할리우드를 정복하겠다는 꿈을 꿀 차례죠. 저와 같은 길을 가고 싶어하는 다른 코리안 아메리칸들에게도 좋은 멘토가 되고 싶단 꿈도 있어요." (그레이스) "제가 좋아하는 스토리를 만들고 연출하는 것은 언제나 큰 기쁨이에요. 그래서인지 전 아직도 모든 일이 기대되고 흥분돼요. 우리의 작품으로 미국 방송가와 칸느 같은 세계적 영화제를 누비는 날까지 끊임없이 제 재능을 시험하고 노력할 겁니다." (안드레아)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201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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